아련한 추억의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2016. 1. 9. 05:30인천 여행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시나요?.

 

  수도국산은 소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만수산 또는 송림산으로 불렸다. 

  수도국산 인근에 솔 고개라는 뜻의 송현동과 소나무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 송림동 등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인천은 원래 우물이 적고 수질이 좋지 않았는데 개항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인구로 물 확보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제국 시기 중앙관청인 탁지부에서 1906년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 이라는 명칭은 1909년 190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를 벌인뒤 산꼭대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하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 소재지/전화번호 : 인천시 동구 송현동 163번지 / 032)770-6131

    - 이용시간 : 오전9시~오후6시 (매표마감은 관람종료 30분전)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및 추석날 당일)

    - 관 람 료 : 성인 1000원, 청소년 (13~18세),군경  500원 등

 

 

 

  △ 70년대의 인천 최고의 중심지는 동인천역 주변이였다

      수많은 음악다방들.....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번지 다방, 미담 다방"....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 있는 "버드나무집",

      답동에 "영주집".....카네기...등 아름다운 젊음을 함께하였던 추억이 있는곳이죠.... 

 

 

 

 

 수도국산에 달동네가 생기기 까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에 왜병이 전환국(현제 전동) 근처에 주둔하였는데, 

이때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켜서 송현동 산언덕에 새로운 주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는 송현동 달동네에 대한 기록으로 고일이 인천의 근대화 과정을 기록한 “인천석금”에서 찿을수 있다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한 한국인들은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마을을 찾았고, 비탈진 소나무 숲은

가난한 사란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 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이주하였다

산꼭대기까지 작은 집들이 생기면서 18만m2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천여 가구가 모듬살이를 하였다

따라서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추억이 있는 달동네의 풍경들이죠....장사를 하러 따나는 어머니를 배웅하는 딸의 모습....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서 연탄 배달을...

 

 

  공동 화장실 이용을 위하여 줄을 서고...참 오랫된 모습이네요.

 

 

 

 

 

 

 

 

  70년대 달동네 삶을 재현하다

  달동네 주변에는 시장이 있었고 달동네로 가는 어귀에는 상가들이 모여 있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도 여는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초입에 구멍가게, 연탄가게, 복덕방, 이발소 등이 자리 잡았다

  가게들을 지나면 동네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길은 윗동네로 갈수록 가파르고 좁아서 손수레조차 다니기 힘들 정도

  였다

 달동네 집들은 경사면에 위치하고 좁은 공간에 여러집이 있다보니 수도나 변소를 집집마다 설치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결국 공동으로 화장실과 수도를 설치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수도국산 달동네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여서 공부할수

 있는 야학당이 있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1971년 11월의 어느날을 재현하였다

 

 

 

 

 

 

 

 

 

 

 

 

  △ 빈곤한 생활에 조금이나 도움이 되려나...온 가족이 성냥통 완제품....부업을 하는 풍경들..... 

 

 

 

 

 

 

 

 

   △ 시골집이나..도시의 달동네이나....조상님들을 사진을 귀하게 여겨서 마루에 걸어놓고....야외 화장실 사용으로

       마루에 필수품인 요강....지금도 이런 모습을 볼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곳에서 자란......곽현숙님의 말이다.

       " 나에게 수도국산 달동네는 부끄럽거나, 슬프거나 아픈곳이 아니었어요.

         지금에 나를  살게 하는 힘이죠"

             

 

 

 

  수도국산 달 동네박물관 설립은 어려운 시절시대 이제는 가난에서 벗어나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하고 허리띠를

  졸라 매던 시절이 있었다. 

  물질적으로 고도성장을 해온 우리 사회가 이제는 어느새 그 어려운 시절을 돌아보며 아주 먼 옛날 야야기도 아닌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젖는 것이 어느새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은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하고 말씀하십니다.

  어려운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는 이웃 간의 끈끈한 정이 있었고 더불어 나누던 공동체의 미덕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다시 회복하여야 할 아름다운 미덕이기도 하며, 달동네박물관에서

  보여주고자  건립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구경하시는 관람객들중에는 전시를 보면서 우리가 경험한 가까운 옛날이야기를 하며 눈물짓고

 그리워합니다. 

 30,40대는 어린자녀와 부모님을 모시고 3대가 같이 전시를 돌아보며 자신이 몸소 경험한 것을 떠올리기도 하며,

 어려운 시절을 부지런히 생활하시며 키워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그 동안 잊고 지낸 당시의 이웃과 친구들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에게 지난 생활이야기를 들려주며, 따뜻한 감동이

 있는 감성박물관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저도 70년대에 이곳과 멀지 않은 송림동에서 연탄불에 밥을 하고, 석유곤로에 쌀뜬물 김치찌게를 만들면서

  이곳에서 유학하며 자취를 하던 아련한 기억들이 자꾸만 생각나네요....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그곳을 방문하니...아주 많이 변한곳도 있고요...아직도 전의 모습을 간직한 곳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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