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구채구여행] 청도 가는길 강족마을

2016. 1. 27. 05:00해외 여행

 

 

 

 

 

  강족은 중국 민족 중에서도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중의 하나로 현재 사천성 아바 장강자치주내의 자치 민족 중 하나로

  주로 모현과 문천, 이현, 송판등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전국 제 일차 인구조사시, 자치주안에 살고 있는 강족은 48261명이 주안의 

  총인구의 9.98%를 차지하였다

 

  중서는 <강족사>에서 강족을 언급하여 말하길 "강족은 고대 서쪽에 사는 유목민으로써 중국서부 각지에 분포하여 있었다.

  그들은 본래 농목을 겸하는 부락이었다."라고 하였고 강족은 주로 양을 길렀으며 강족의 羌자도 羊과 人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삼천여년전의 갑골문의 기록에서도 밝히길 은상시기 이미 강족이 역사의 무대 위에 존재 했었고 활약했었다고 한다.

 

 

  오늘은 3일차 여행으로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구채구의 하워드존슨호텔에서 부페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7시에 송판고성

     외관 및 강족마을 여행과 천부촉운쇼를 보기 위하여 구채구에서 약 6시간 30분 소요되는 성도로  버스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어느듯 중국음식에 조금은 적응을 되는듯 네요...아직도 어랴운 음식이 많이 있지만요...

     그리고 구채구는 고산지대라서 아침에는 아직도 날씨가 추워서 두꺼운 파카를 착용하여야 합니다.

 

     리무진 버스가 구채구에서 약 2시간 30분경을 달려서 도착한 강족마을은 겨울이고 많은 여행객이 없어서 공연도 없고

     한산하고요....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것은 마을입구에 걸어놓은 양머리 이네요...

     오늘은 "중국에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강족마을의 유래와 마을풍경" 을 포스팅 하여봅니다

     그리고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의 강족이 우리나라 강씨의 선조라고 하는데....정확성은 모르겠네요....

       

 

 

 

 

 

 

 

 

 

 

  현재의 민강상류의 강족들은 <사천 고대사>에 쓰여 있길 진한과 그 이후시기에 이주해 온 강족과 현지 원주민이 합쳐져 지금의

  강족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는 강족들 사이에 전해오는 전설로써도 알 수 있는데, 아주 오랜 옛날 강족은 한 번의 큰 이동이 있었다.

   그중 한 부류가 민강상류로 이동하여 왔다. 여기서 그들은 낯선 종족과 부딪치게 되었는데, 그들은 힘이 세고 덩치가 컸다고 한다. 

 

  강족은 그들과 전쟁을 하였고 계속적인 패배를 거듭한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하려 하던 차에 다행히 꿈에서 신의 계시를

  얻어 단단한 백운석과 나무막대기로 무기를 만들어서 손잡이에 양털로 표지를 세기고 마침내 전쟁에 승리하였다.

  이후 이들은 안전한 거주지를 얻게 되었고 신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백운석을 가장 높은 하늘의 신으로 섬기고 이러한 습관은

  지금까지 전해진다.

 

 

 

 

   강족은 그들과 전쟁을 하였고 계속적인 패배를 거듭한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하려 하던 차에 다행히 꿈에서  신의 계시를

     얻어 단단한 백운석.....위쪽에 보이는 것이 "백운석" 이며 아직도 최고로 숭배를 한다고 한다. 

 

 

 

 

 

 

 

  동파 문자(중국어: 东巴文)는 중국 운남성의 나시족이 사용하는 상형문자이다.

  한자를 빼면 천년이 넘는 역사가 있어 현재도 쓰이고 있는 단 하나의 상형문자이다.

 

  상당히 추상화된 한자에 견주어 문자 모양이 나타내고자 하는 사물의 본 모습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어 그림문자에 가까운 특징을

  보여 준다.   이집트 신관문자, 수메르 쐐기문자와 같이 뜻을 나타내는 부분과 음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나뉜다.

  나시족은 동파 문자외에 한자의 영향을 받은 음절문자인 게바 문자와 로마자에 바탕한 철자법등 세가지 정서법이 있다.

  나시족의 종교경전이자 백과사전인 동파경에 쓰인다.

 

 

 

 

 

 

 

 

 

  산해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강족의 조상인 “미(峚)”족은 4,000여 년 전 가장 이르시기, 고원상에서 야생 야크와 소, 말 등을 길들인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를 토대로 생활범위를 점차 칭짱(青藏, 청장)고원에서 황토고원으로 확장되게 된다.

 

  상(商)왕조 시기에 이르러 미(峚)인은 길들인 양을 우호의 표시로 상(商)왕조에 보냈는데 상나라 사람들은 “峚”이 보낸 양의

  생김새를 보고 새로운 한자 “羌”(강)을 만들어냈고, 이로써 “峚”(미)족 사람들을 “강인(羌人)”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록의 주인공인 강족의 최대 집거현이 바로 “마오현”이다.

 

 

 

   ▲  강족은 주로 양을 길렀으며 강족의 羌(강)자도 羊과 人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기원전 11세기 중국의 은나라를 멸망시킨 인물로 염제신농의 후손이라고 전해오며,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尚), 자는 자아(子牙)

   이며, 호는 비웅(飞熊)이다.

   주왕이 항시 꿈에서라도 바라던 인물이 비로소 나타났다 하여 흔히들 ‘태공망’이라고도 불렸다. 강태공의 본관은 천수 강씨

   (天水姜氏)이며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다.

 

  강태공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수불반분’(한 번 엎지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이다.

  ​강태공의 전(前)부인 마씨는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 전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강태공 곁을 떠났는데, 이후 강태공이 성공했을 때

  다시 돌아와서 아내로 맞아주길 요청했다.

 

  이에 강태공은 하인에게 물을 떠오라고 한 후 그 물을 땅에 엎었다.

​  그리고 돌아온 아내에게 지금 바닥의 그 물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면 다시 아내로 맞이해주겠다고 했다.

​  즉, 한 번 떠난 마음은 두 번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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